경마의 구미

##_029,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굴레

전갈의 침 2010. 1. 23. 17:01

##_029,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굴레


첫 번째:

A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이른 새벽 아침이면 자신의 집 주위 길을 늘 맑끔하고 깨
끗하게 쓸고 청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TV나 라디오 혹 선풍기 등을 고치는 약간의 재
주가 있었는데 살다보니 이웃이 사촌이라고 옆집, 뒷집의 고장난 가전제품을 무료로 고쳐주자
모두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참하고 성실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주위 동네 아저
씨 아주머니는 "A씨, 참 훌륭해, 착하고, 너무 성실하단 말야." 할 만큼 인정도 해주어 그는 늘
흡족했습니다. 아니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인생에 아주 중요한 거래를 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그 일을 성사시켜
야 하는데 그 날이 일요일인지, 카드를 잃어버렸는지, 무슨 일에 걸쳐 있었는지 자신의 재산을
찾을 수 없는 불의에 사건에 달한 것입니다. 그에게 은행에 1억이 있든 10억이 있든 중요한 것
은 당장 50 만원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일에 그 거래를 성사시켜만 성공의 발
판을 마련할 수 있는 찬스가 주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집 아저씨에게 "낼 아침 은행이 열리면 바로 갚겠습니다. 그러니 한 50 만원(현재 시
가)만 빌려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앞집 아저씨는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마누라에
게 얻어쓰는 주제에~~"라고 거절했습니다. 뒷집 아주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말
일이라 통신비 등 모두 월세금을 계산을 하고 남은 것이 없는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가 그래도 작은 재주지만 도와주었던 사람들은 모두 거절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일생의 아주 중요한 거래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이 모두 위선과 거짓으로만 만들어졌음을 원망하고 증오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 동네에서
자신의 얼마의 사업을 접고 떠나야 했습니다.

성경, 마태오복음 6장 2절에 보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구절이 있습
니다. A가 아침마다 거리를 쓸고 청소를 한 일, 그리고 약간의 재주로 동네 오래된 고장난 가전
제품들을 고쳐주었던 일은 착하고 성실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즉 민
심은 천심이듯이 하늘은 그것만을 보지 않음을 A라는 사람은 몰랐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족입니다. 그런데 A는 그 동네에서 1년 아니 수년을 살면서도 한번
도 자신의 가족에 대해 찾거나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마누라, 아들, 딸 함께 트리에 장식을 달고
서로의 그간의 마음의 선물을 담아 놓고는 가족과 함께 영화나 외식을 한 후 돌아와 서로의 사
랑을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1월 1일은 가족이 있든 없든 새해 마음으로 각 도시의 산이나 높은 곳에서 새해를 설계하는 시
간입니다. 가족과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가 만약 진실한 교인이라면 절이나 교
회 혹 성당에서 자신의 조상을 먼저 생각하고 그곳에서 앞으로의 각오를 다져야할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아니 민심은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A가 아침 일찍 청소를 하고 오래된 동네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것은 자신을 증명하려고 일부러 애쓰는 것이지, 정말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동네 어른신에게 "착해, 성실해" 하는 것으로 이미 보상을 다 받은 것이
라는 사실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더 바란다는 것은 성경에서 오른 손이 하는 왼 손이 모르게 하
라는 진리를 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마사회를 비판하고 자신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주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주 개판인 사회지요.


두 번째:

A는 모든 것을 잃고 달동네로 이사갔습니다. 그리고 깨닫지 못한 생활은 전과 같습니다. 그래
서 거기서도 열심히 청소하고 약간의 능력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오래된 가전제품도 고쳐주고
했습니다. 그리고 "뚱뗑이 엄마, 내 텃밭에 상추 좀 따 먹을께" 뒷집 빼빼아줌마에게 "고추장 좀
얻어." 하고 키다리아저씨의 텃밭에 고추와 깻잎을 허락도 없이 따서 없는 반찬으로 대용하기
도 했으며 "빼빼아줌마, 나 저녁에 돌아와 줄께 한 3만원만 빌려" 하며 말하면 서슴없이 빌려주
기도 했고, 또 빼빼아줌마는 물론 키다리아저씨와 뚱뗑이 엄마도 A에게 그렇게 1~3만원은 서
로 융통했습니다. 그리고 A는 이런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고 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
은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고 정도 아닙니다.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1998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EBS의 명화(샘 레이미 감독)로도
유명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마을 뒷산에서 400만 달러가 넘는 돈이 있는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탐욕에 젖은 형제와 인간들의 욕망으로 살인의 미래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코엔형제의 파
고 (1996년)도 그런 유의 영화지만 이미 1979년 정진우 감독 이대근, 유지인 주연의 "심봤다"가
따지자면 원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내가 목숨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친구가 유지인씨를 좋아
해 홀딱 벗는다고 해서 봤는데, 샘 레이미감독의 심플 플랜이나, 코엔 형제의 파고는 영화의 세
련된 면이 있어 그렇지 정진우 감독의 "심봤다" 역시 위 평범하지만 조건이 성립되면 모두 인간
의 탐욕과 욕망을 잘 표현한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달동네에 사는 사람이 땅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야산 혹 남의 땅 짜투리에 붙여먹
는 것이지요. 그것은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고 정도 아닙니다. 생존의 법칙이지요. "언젠가 이런
구질한 삶을 떠나고 말거야" 하며 마음 속에 늘 간직하면서도 현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곳에서 쫒겨나 노숙을 해야 할 처지인데 그런 최소의 노력과 정도 없다면 어찌 그런 곳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삽니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국보급 도자기류의 보물 혹 금덩이나 어느 날 유성이 날라와 귀중한 보석보
다 가치가 있는 돌이 떨어졌다면? 국가에 신고하기도 전에 암투가 벌어진다는 것을 위 영화가
잘 말해줍니다. 솔찍히 위 영화의 감독이나 소설가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기를 인간 사회에 경
고하는 것이지만 픽션(허구)은 곧 현실화됩니다. 생존은 동물의 법칙일뿐 인간의 법칙이 아닙
니다. 인간은 함께 하는 여유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늘 하셨던 어머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늘 서로 웃고 지내지만 어떤 조건이 오면 죽음을 불사르며 그것을 차지하려고
암중 모색하고 자신의 굴레를 벗어날 궁리만 찾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노력은 없고 요행
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굴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이 있
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고 영원히 가난한(정신과 돈) 굴레를 탈피할
수 없게 한다는 것 뿐입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설령 로또에 당첨이 되어도 얼마가지 못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제발 부탁이야. 도와줘, 흑흑~~~"

"나는 너희같은 사람들을 잘 알아. 너희같은 사람들은 남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 잘못을 드러내
지 않고 늘 정당하려고만 애를 쓰지. 남이 쉽게 보이는 앞에서는 늘 기도를 하거나, 아니면 침
묵으로 위장하여 자신은 속을 감추려고만 해. 그리고 자신은 절대 무엇을 하거나 노력하여 이
루지 않고 늘 남이 하거나 이루려고 하는 것을 지켜만 보지. 그러면서도 아주 교활하게 양시론
과 양비론적 중용을 표방하며 "모두가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깊고, 너그러우며, 진심으로 미래를
긍정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는 정열을 가진 성숙하고 강인한 인격의 소유자"로 인정
하여 믿고 의지하게 만드는 거야. 그것이 위선의 함정이지만 착하고 성실하고 평범한 사람들
은 늘 위로받으려고 너희같은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는 거지.

"왜?"

인간은 누군가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같은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본능적인 조직목적을 가
졌거든. 그러나 너희같은 인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늘 그냥 씩 웃어. 마치 모든 것을 이
해하고 공감한다는 듯이~~~. 그런데 정작 위기가 오면 그 털어놓은 것을 가지고 오히려 꼬투
리지를 잡고 자신의 무기로 활용하여 남이 이룬 것을 빼앗거나 복속시켜 우월감을 즐기지. 그
렇게 너희들은 자신의 이웃을 감금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만 주장하여 철저하게 구속하고 지
배하는 거야. 그리고 그것을 이탈하는 자는 
무참히 짓밟지. 그게 너희들의 수법이야. 아주 치
사하고 교활한 인간들이지. 그러나 너무 고도로 익숙한 위선의 조작이라 쉽게 드러나지 않아.
아니 애초 너희들은 그렇게 원인을 조작하지. 그리고 결과만 탓하고 원인은 묻지 않는 거야.
그렇게 본질은 왜곡되고 오히려 잘못 건드리면 치명타를 입고는 모든 것을 뒤집어 쓰지. 나는
그것을 오래 전에 깨달았어. 무척이나 많이 당했거든. 그렇게 당신은 나의 영혼을 죽이면서 즐
거워했잖아. 그런데 왜 내가 당신을 도와야 하지."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는 악마가 있음을 믿어. 그리고 천사가 있음도 믿지. 악마와 천사의 차이가 뭔 줄 알아. 영적
이나 귀신들린 이야기가 아냐. 바로 아무 것도 없지만 성실에 따른 책임값을 가지고 자유에 따
른 떳떳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이 천사고, 끼리와 구별을 짓
고는 그것에 편견을 두어 갈라놓으려고 하는 것이 악마라고 생각해. 그래 나는 결손 된 가난하
고 없는 가정에서 자랐지. 무척 얼굴이 어두웠어. 너무나 힘이 들었거든. 하지만 나는 성실했고
떳떳하게 살았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또 부담 없이 정말 착하게 열심히 살았어. 그런
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 그런 나를 네가 모함하고 갈라놓을 수 있지."

"잘못했어. 나를 용서해 줘. 바희~~"


"인간은 인간을 용서할 권리가 없어.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지. 오직 함께 할 뿐이야. 그런
데 당신은 이곳(영혼의 세계 - 아바타쯤 될까?)에서도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또 내게 짐을 지
웠지. 그러면서 이번에는 무슨 정당성이 또 필요하지."

                                                  - 1995년 발행한 람다성. 제 3권, 36페이지 26파일에서 -


네 번째:

"선생님, 저의 소원은 별로 크지도 않습니다. 그냥 소박할 뿐이지요."
"그래 네 소원이 뭔데?"
"작은 논과 텃밭을 가구며 저녁에 돌아와 평상에 앉아 마누라가 차려준 음식에 탁주 한잔 놓고
하늘에 떠있는 달과 개울가에 비친 달, 창가의 비친 달, 내 마누라의 눈에 있는 달, 그리고 탁주
잔에 든 달을 비교하며 그렇게 욕심없이 한평생 살고 싶습니다."
"아주 미친 또라이 놈 아냐!"
"왜요?"
"그런 아무 욕심도 안들 여유로운 삶은 신선이 세 번 죽었다가 깨어나야만 하는 삶이라는 것을
네가 정령 모르더란 말인냐? 나부터도 그런 삶이 주어진다면 당장 달려가겠다. 이 놈아!"

                                                                          - 후한시대 사상가 왕충의 "논형"에서 -

어머님의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라. 좋은 친구 사귀거라. 그리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라.>

나름에 능력을 개발하여 갖추고,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좋은 사람을 만나 그런 부류의 위치에
서라는 말이며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은 하늘의 운을 거역하는 일을 벌이지 말라는 뜻이었습니
다.

사실 이 세 가지 말씀을 잘 들은 사람들은 결국 이 사회가 꼬박고박 남부럽지 않는 월급은 물론
핸드폰도 주고, 노트북에 자가용 그리고 때가 되면 집도 줍니다. 그것이 왕충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탐욕에 어머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저 하고 싶은데로 다 하고서는 안되
니까 사회에 불만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그게 그들의 슬픈 굴레이지만 전혀 깨닫지 않고 자신
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분명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면 사회에 꼴찌를 하고 루저로써 남
아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안간힘을 쓰지만 다른 꼴찌들이 일등을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사회에 길들여지지 않는 혁명가로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들은 사회에 또라이들로 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같은 또라이들끼리 절
대 뭉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또라이가 또라이를 알아보는 것일까요? 즉 서로 잘 알기에 그것
이 앞에 인간의 조직목적처럼 각 또라이들의 하는 행동은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흠으로 작용하
고 실패를 할 때 그 흠은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
하지만 현실의 행동은 있는 자의 보수적인 마음을 똑같이 사용한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것을 모르는 것이 그들의 슬픈 굴레입니다.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그리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도 바뀝니다. 차분하면서도 냉철하
고 꾸준하게 우공이산의 도처럼 기록을 쌓는자가 결국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교사의 이름도 모르고 말의 이름도 모르고 하는 자들이, 아니 육하원칙은 물론 기승
전결, 혹 서론 본론 결론에 따른 주장과 명확하고 확실한 실례에 따른 근거도 없이 자신의 눈으
로만 비리를 말하고 부정을 주장합니다.

참고로 하나의 자료를 보여드리지요.

2008년 서울 경마가 1,108 경주를 치뤘습니다. 그런데 가장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대길은 259개
가 왔습니다. 그 총 배당은 947.0배입니다. 환수률이 85.5%입니다. 2009년 서울 경마는 1081 경
주를 치뤘습니다. 그런데 대길은 225개가 왔고 그 총배당은 874.5배로 환수률은 80.9%입니다.

대한민국 경마의 세금은 27%에 100배당 이상의 22%의 기타 소득세와 기타 주민세를 별도로 납
부해야 합니다. 그러면 32%의 세금이 넘습니다. 그들 또라이들이 주장하는 갈아놨는지 뺐는지
부정을 했는지 짜웅을 했는지 그런 것까지 다 들어오면 대길은 100%가 넘습니다. 대한민국 국
민들에게 일을 하자는 것인지 놀고 먹자는 것인지, 도박에서 전 경주 100%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돈 거져 준다는 것입니다. PART1의 선진국 경마에서도 평균 23%의 세금을 물리는데 기본
대길 77%의 -,+ 5%를 잘 넘지 않고 나머지 순위는 보험의 위험부담률에 약 1%씩 빠지는 것입
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마는 세금에 비해 세상 유래없는 환수률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부자들에게 나눠주는 형태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가요?

세상의 모든 스포츠는 크게 두 가지의 기술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파워이고, 다른 하나는
테크닉입니다. 씨름으로 치면 이만기, 강호동이 테크닉씨름을 한다면 이봉걸, 최홍만 등 등치
로 하는 파워씨름으로  분류하듯이 김효섭, 천창기 - 문정균 - 오경환 - 조경호 등이 테크닉적
으로 기승을 하고 박태종, 임대규 - 함완식 - 문세영 - 원정일 등이 파워적으로 분류할 수 있지
만 많은 기수들이 체력적으로 열악함을 알고 테크닉적 기승술을 쓴다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테크닉 경마는 가속도를 많이 이용하는데 동작이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들어올 때는
그것이 환상적인 짜릿함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못 들어오면 큰 동작을 오류라고 볼 수 있게 만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근 3년전부터 서울 재결위원들이 게쉬타포로 변했는지 테크닉 기
승술에 보다 많은 재결을 준었다는 사실입니다. 위원장이 석영일씨라고 하는데 게쉬타포적인
사고를 가졌는지? 외국 기수들은 거의 테크닉 기승술을 보다 많이 사용하는데 그래서 서울에서
맥을 못추고 서울 테크닉기수들은 몸을 사리어 경마가 박진감을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는 것입
니다. 더 큰 문제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소일거리와 레저를 위한 사람들의 돈이 있는 놈들
에게 간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해도 이런 자료와 함께 원인을 분석해가며 비판을 해야 하는데 또라이들은 경마의 원리
가 뭔지도 모르면서 비판을 하고 대한민국을 놀자판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웃기는
짜장같지만 그것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굴레입니다.


                                               - 아직도 꺼지지 않는  도서관의 불을 사랑하는 전갈의 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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